朴敬洙教授(嶺南大学校文化人類学科)の持論





   회갑을 맞이하는 광복절 아침에 모두가 한마음 한뜻 같지는 않학. 도처에 차려진 잔칫상이 무색하게도, 들리느니 곳곳에서 파열음이다.이는 해방 諦년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와평가가 뚜렷이 양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 몇년 사이에 격화되어 왔던 '과거사 내전(內戰) '이 에번 8· 15를 전후하여 절정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식민지 경험과 해방, 민족의 분단과 전쟁, 산업화와 경제성장, 독재와 민주화, 그리고북한과 통일문제 등을 놓고 이른바 '보수''진보'는 사사건건 대립과 충돌이다.   역사를 보는 시각은 일정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타. 안타까운 일은 지금 우리 사회의역사인식이 열린 다양성 대신 이념적으로 분화된 스레레오 타입에 깊숙이 매몰되어 있하는 점이라. 따라서 역사해석은 좌우를 막른하고 판에 박은 듯 전형적이고 틀에 맞춘 듯 삶투적이타. 말하자면 '거창한 관점' '거룩한 담론'이 역사 이해를 압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로 정형화된 역사가 곧 겐실은 아니다. 과거와의 대면이 반드시 민족이나 계급 같은 집단적 주체를 통해 이루어질 필요도 없거니와 게인의 사적 기억이 공적 역사서술 못지않게 소중하다는 것은 최근 세계 역사학계 일각의 지혜이기도 하다.   집단의 역사(history)와 게인의 기억

(Memory) 사이의 괴리는 좌파 민족주의 특유의 지적 포플리즘이 앞장서 벌리고 있타. 이범과 목적에 따른 '역사의 재구성'이 민족과계급을 전면에 내세우는 바람에 개인은 사상(捨象)되고 각자의 실존적 기억은 증발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무릇 이 땅에 태어났다면 마땅히 민족주의와 계급의식으로 충만해야 한다.민주주의에 대한 확신과 평등주의에 대한 신념은 당연히 목숨보다 강해야 하는 것이고 통일또한 언제 어디서나 지고지순(至高至順)의 가치를 지녀야만 한다. 이처럼 사실과 실제가 아닌 당위와 희망의 역사는 궁극적으로 역사의대중화라는 명분을 걸고 '인민재판 사관'으로골인한다. -   하지만 한 인생의 역정에서 가령 친일(親日)의 과정이 간단할 리 없다. 부역(附逆)의 정황도 단순할 순 없다. 군부에 항거했던 삶이 고귀했다고 해서 독재와 더불어 살아야 했던 인생이 비천한 것만은 아니다. '밥이 하늘'이었던그때가 전설이 아니듯 '공산당이 싫어요'에 생사가 걸렸던 그 시절 또한 지어낸 소설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라를 세운 인물로 이승만을, 나라를 키운 인물로 박정희를 수많은 사람들이 생생하게 기억하는 객판적 현실을 사관(史觀)이나서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지구상 최빈국(最貧國) 가운데 하나가 불과 수십년 만에 선
진국 반열에 이르게 된 세계사적 기적을 학문의 이름으로 폄하한다면 그것은 목욕물 쏟으려다 아이까지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북한에대비한 남한의 성공 앞에서 자부심 대신 죄의식을 요구하는 역사가 있다면 그것은 해방 이후 한민족 모두의 삶에 대한 총체적 모독이다.   서울 가보지 않은 사람이 서울을 더 잘 아는체하는 것이 요즘의 역사 무대다. 후대(後代)에 레머난 행운을 무기 삼아 과거사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이 요사이 역사 전쟁이다. 그런만큼 광복 關년의 의미를 더 이상 '역사'에 밭기고 물을 수만은 없다. 이제는 역사로부터 '기억'이 독립하고 해방될 때다. 개인의 사적 체험과 직접 경험이 주체가 되어 역사의 전횡과 독단을 견제해야 한타, 이는 과거의 사실적 재구성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증오와 보복이 아닌을서와 화해를 모색하는 일에도 '역사'에 대한 '기억'의 보완과 협력이 절실하기 때은이다.   지난날 어둡고 길었던 우편향 식민 ·냉전사관이 기껏 좌경 국수주의(國粹主義) 사관에서 대안을 찾는다면 광복 60년 동안 노력하고 가워왔던 우리의 삶은 또다시 도로(徒勞)가 될 뿐이다. 권력과 지식의 어좋많은 동업이 나라를망치고 미래를 흔드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역사를 끝내 공유하지 못하면 민족은 더 이상하나가 아니타.

 きょうじ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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