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資料1919년 12월 20일자 「대한적십자회 회원 대모집 경쟁회」
아시아역사자료센터 소장 신규 사료 소개
1919년 「대한적십자회 회원 대모집 경쟁회」에 관한 한일 사료의 비교와 검토
핵심 키워드(Key Word)
「本競争会ハ会員大募集ヲ目的トスルノミナラズ実ハ民心ヲ鞏固ニシテ将来ノ独立運動資金ヲ調達スルニ在リ(秘密ノ事)」
한국어 번역
“본 경쟁회는 회원을 대대적으로 모집하는 데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민심을 공고히 하고 장래의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비밀 사항)”
이 기록에 주목하는 이유는 한국 측에서 지금까지 공개한 관련 사료집에는 이 내용이 수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원문 판독】
(표지 및 서두)
秘密第一〇二号 其六五四
大正八年十二月二十日
高警第三五九九一号
비밀 제102호, 기 제654호
다이쇼 8년(1919년) 12월 20일
고경 제35991호
Ⅰ. 서론
1919년 3·1독립운동을 계기로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해외 한인들의 독립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직된 대한적십자회가 의료구호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한편, 병원 설립과 간호원 양성을 사업 목적으로 내세웠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자료는 아시아역사자료센터(이하 '아시아역사자료센터'라 약칭함)가 소장한 1919년 12월 20일자 「국외정보(國外情報)」이다. 이 자료에는 대한적십자회의 회원 모집 활동에 관한 기록이 포함되어 있다.
이 사료는 상하이에서 경성으로 발송된 서한을 일본 측 당국이 압수하고, 그 내용을 경찰, 특히 특별고등경찰의 정보로 보고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 보고서에 나타난 회원 모집 조직의 구성과 한국 측에 남아 있는 대한적십자회 자체의 모집 기록 사이에 간과하기 어려운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번에 제시된 일본 측 사료의 판독문에는 회원 모집의 실제 목적이 장래의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는 데 있었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먼저 일본 측 사료의 내용을 정리하고 한국 측 기록과 비교하여 양자의 일치점과 차이점을 밝히고자 한다.
나아가 일본 측 경찰 정보가 작성된 과정과 그 사료적 성격을 검토하고자 한다.
Ⅱ. 일본 측 경찰 자료의 개요
본고에서 소개하는 자료는 아시아역사자료센터의 참조코드 C06031144400에 해당하는 사료이다.
제시된 판독문에 따르면 문서의 작성일은 다이쇼 8년(1919년) 12월 20일이며, 문서번호는 고경 제35991호, 표제는 「국외정보」, 건명은 「대한적십자회 회원 대모집 경쟁회」이다.
이 문서는 상하이에 거주하는 박 모(朴某)가 경성의 친구에게 보낸 서한을 치안상의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특별고등경찰이 12월 9일 압수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해당 서한에는 대한적십자회가 병원 설립과 간호원 양성을 위해 경쟁 방식으로 회원 모집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회원 모집 조직은 네 개의 대(隊)로 나뉘었으며, 각 대에는 대장과 대원이 배치되도록 되어 있었다.
네 개 대의 명칭과 대장은 다음과 같다.
| 부대명 | 대장 |
|---|---|
| 삼일대(三一隊) | 관제호(関済鎬) |
| 일이대(一二隊) | 신익희(申翼煕) |
| 독립대(独立隊) | 최상규(崔相奎) |
| 적십자대(赤十字隊) | 이동휘(李東輝) |
모집 기간은 11월 20일부터 12월 20일까지로 정해져 있었으며, 각 대와 개인의 모집 실적을 경쟁시키고 우수자를 표창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경쟁 방식은 회원 모집을 촉진하기 위한 조직적인 동원 방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시아역사자료센터 소장 자료에는 일반적인 회원 모집 계획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기록이 존재한다.
바로 회원 모집의 실제 목적이 단순히 적십자회의 조직을 확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민심을 결집하고 장래의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는 데 있었다고 명시한 부분이다.
이 내용이 실제로 압수된 서한에 포함되어 있었는지, 아니면 정보의 전달 및 편집 과정에서 추가된 것인지는 사료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문제이다.
Ⅲ. 한국 측 사료와의 비교
한국 국사편찬위원회가 간행한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제31권에는 「대한적십자회 회원 대모집 경쟁회」라는 제목의 문서가 수록되어 있다.
자료집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1919년 11월 27일자 『독립신문』에 게재된 대한적십자회 자체의 회원 모집 공고이다.
이 문서에도 병원 설립과 간호원 양성을 목적으로 회원 모집을 네 개 대의 경쟁 방식으로 실시한다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다.
이 점에서 일본 측 경찰 자료와 한국 측 기록은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나 모집 조직의 구성을 살펴보면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한국 측 모집 공고에 나타난 대의 명칭과 대장은 다음과 같다.
| 부대명 | 대장 |
|---|---|
| 삼일대(三一隊) | 민제호(閔済鎬) |
| 자유대(自由隊) | 김병조(金秉祚) |
| 독립대(独立隊) | 김보연(金甫淵) |
| 십자대(十字隊) | 차관호(車寛鎬) |
이를 아시아역사자료센터 소장 자료와 비교하면 제1대를 제외하고는 부대의 명칭과 대장이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한국 측 사료에서는 모집 기간이 11월 23일부터 12월 14일까지로 되어 있어 일본 측 판독문에 기재된 기간과도 차이가 있다.
더욱이 일본 외무성 기록에 근거하여 한국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같은 날짜의 「국외정보」(고경 제35991호)에는 네 개 대가 삼일대·자유대·독립대·십자대로 기재되어 있으며, 대장 역시 한국 측 모집 공고와 유사한 구성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문제가 단순히 한국 측 사료와 일본 측 사료 사이의 차이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1919년 12월 20일이라는 동일한 날짜와 고경 제35991호라는 동일한 문서번호를 가진 일본 측 기록의 공개 번각문과 이번에 제시된 아시아역사자료센터 소장 사료의 판독문 사이에도 중대한 차이가 존재한다.
Ⅳ. 한국 측 모집 결과 기록을 통한 검증
더욱 주목되는 것은 대한적십자회의 회원 모집 경쟁회 결과가 같은 해 12월 21일 발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결과는 12월 27일자 『독립신문』에 게재되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제31권에도 수록되어 있다.
결과 보고에 따르면 각 대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 부대명 | 모집 점수 |
|---|---|
| 자유대 | 316점 |
| 독립대 | 93점 |
| 십자대 | 64점 |
| 삼일대 | 52점 |
대장으로 기재된 인물은 자유대의 김병조, 독립대의 김보연, 십자대의 차관호, 삼일대의 민제호이다.
이 명칭들은 11월 23일의 모집 공고와 일치한다.
따라서 한국 측에는 모집 개시 당시의 공고와 모집 종료 후의 결과 보고라는, 상호 대조가 가능한 두 종류의 사료가 존재하는 셈이다.
반면 이번 아시아역사자료센터 소장 자료에 나타난 부대 편성은 이러한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차이를 곧바로 일본 측의 조작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에 앞서 몇 가지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
회원 모집 활동의 준비 단계에서 작성된 별도의 계획안이 존재했을 가능성, 서한에 포함된 전언이 잘못 전달되었을 가능성, 경찰 측이 정보를 정리하거나 가공했을 가능성 등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Ⅴ. 독립운동 자금 조달에 관한 기록의 문제
아시아역사자료센터 소장 자료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회원 모집의 배후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려는 비밀 목적이 존재했다는 기록이다.
반면 한국 측의 1919년 11월 23일자 모집 공고에는 이러한 비밀 목적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
또한 한국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일본 외무성 기록의 같은 날짜 「국외정보」 번각문에도 이번 판독문에서 확인되는 비밀 자금 조달에 관한 구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만으로 실제로 그러한 정치적 의도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한적십자회가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독립운동 관계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료구호 활동과 독립운동 사이에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는 부자연스럽지 않다.
다만 여기서 구별해야 할 두 가지 사실이 있다.
하나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조직이 의료구호 활동을 수행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의료구호를 명목으로 내세워 비밀리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는 동일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후자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금의 징수, 관리, 이전 및 사용 목적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사료가 필요하다.
아시아역사자료센터 소장 자료에 나타난 비밀 자금 조달에 관한 기록이 압수된 원래 서한의 내용인지, 경찰 당국의 해석인지, 아니면 별도의 정보에서 유래한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특히 압수된 서한의 원본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경찰 보고서는 압수 서한의 존재와 그 내용을 설명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반드시 압수 서한의 원본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경찰 보고서에 기재된 정보를 그대로 서한의 정확한 전문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Ⅵ. 간호사 연구의 관점에서 본 사료의 의의
이번 한일 사료 비교는 독립운동사뿐 아니라 근대 간호사(看護史) 연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1919년 대한적십자회가 병원 설립과 함께 「간호원(看護員) 양성」을 명확한 사업 목적으로 내세웠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 명칭은 일본 측 경찰 자료뿐 아니라 대한적십자회 자체의 모집 공고에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간호원(看護員)」이라는 용어는 단순히 일본 측 경찰관이 번역하거나 표기한 용어가 아니라, 1919년 조선인 독립운동 관련 조직의 문서에서도 사용되었던 명칭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대한적십자회가 간호원 양성을 사업 목적으로 내세웠다는 사실은 간호교육이 선교병원 내부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으며,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한 조선인들의 조직적 활동 속에서도 중요한 사업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다만 이번 사료가 보여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간호원 양성을 목적으로 한 사업 계획이다.
실제로 양성 시설이 개설되었는지, 몇 명의 간호원이 교육을 받았는지, 교육 내용과 지도자는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사료를 통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는 근대 조선에서 간호교육을 담당한 주체를 선교 의료기관과 조선인 자체의 의료구호 조직 사이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검토해야 한다는 연구 과제로 이어진다.
Ⅶ. 결론
1919년 12월 20일자 「대한적십자회 회원 대모집 경쟁회」에 관한 일본 측 경찰 자료는 상하이에서 이루어진 조선인들의 의료구호 활동과 회원 모집 상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사료이다.
이번에 제시된 판독문을 한국 측의 모집 공고 및 결과 보고와 비교하면 부대의 명칭, 대장, 모집 기간 등에서 중대한 차이가 확인된다.
더욱이 동일한 문서번호를 가진 일본 외무성 기록의 공개 번각문과도 간과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원인은 현 단계에서 확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일본 측 경찰 당국의 의도적인 조작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단순한 전사 과정의 오류로 처리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향후의 연구 과제로는 먼저 아시아역사자료센터 소장 원본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판독의 정확성을 검증하고, 이어 일본 외무성 기록에 보존된 같은 날짜의 보고서 등과의 관계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두 사료가 동일 문서의 서로 다른 사본인지, 아니면 별도의 계통에 속하는 문서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한편 한국 측의 1919년 11월 23일자 모집 공고와 12월 21일자 결과 보고를 대조함으로써 대한적십자회의 회원 모집 활동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그 구체적인 조직 구성은 상당한 정도까지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병원 설립과 간호원 양성을 사업 목적으로 내세웠다는 사실은 1919년 독립운동과 근대 간호교육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사료의 의의는 일본 측 경찰 정보의 진위를 밝히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 당국이 조선인들의 의료구호 활동을 어떻게 파악하고 기록했는지를 당사자인 조선인 측의 사료와 비교하여 검토할 수 있다는 점에도 중요한 연구사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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